어머니의 노란상자
Yellow Box
몇 년 전 심한 병을 앓으면서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았다.
행복했던 때가 있었을까?
과수원 집 딸로 태어나 사계절의 변화를 감상하며 지냈다.
봄이면 어김없이 피는 꽃이 마냥 좋기만 했다.
여름이면 나무 그늘 밑에서 시집을 읽었다. 모두 꿈 많던 소녀 시절의 기억이다.
아버지는 셋째 딸인 내게 첫 복숭아를 따서 주셨다. 땀 흘려 일 하시는 동안에도 불쑥 빨간 딸기를 이파리에 싸서 내미셨다.
아버지의 애정 표현은 과일의 달콤함 만큼 멋졌다. 오래 전에 사고로 돌아가셨는데, 함께 살던 시절의 그립기만 하다.
과수원은 내 행복의 터전이었다. 그분이 돌아가신 후에야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알았다.
아버지가 가꾸신 과수원을 비로소 찬찬히 둘러 본다. 생전에 새겨 진 이름과 전화번호가 노란 상자가 그대로 남아 있다.
무심코 지나쳤던 사물에서 아버지를 발견한 것이다. 아버지는 여전히 과수원을 떠나지 못하셨다.
홀로 된 어머니는 여전히 과수원 일을 도맡고 계신다. 아버지의 노란 상자는 나무 사이 여기저기에 놓여있다.
힘들면 앉아서 쉬는 의자가 되고, 음식을 먹는 탁자가 된다.
가끔 먼 산을 보며 생각에 잠기는 쉼터이기도 하다. 두 분은 그렇게 만나고 있다.
어머니는 아버지를 보내지 않았다. 미처 정리하지 못한 아버지의 감정들이 남아 있을지 모른다.
두 분을 향한 연민은 곧 나의 문제로 바뀔 것이다. 어머니의 모습은 곧 나의 미래다.
과수원 노란 상자는 계속 이어지는 가족의 연결 고리 이다.



















